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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밀수꾼(?) 문익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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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밀수를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수법으로 어떤 밀수품이 유행했는지를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밀수는 고려시대의 문익점일 것입니다. 문익점 선생하면 다들 아시는데로 목화씨앗. 그러니까 면을 만드는 씨앗을 중국에서 붓에 숨겨 들어와서 면화 재배를 시작하게 만들면서 가히 산업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역사적인 일을 만듭니다.

값 비싼  비단 옷을 사입을 수 없었던 백성들은 한 겨울에도 삼베나 모시 옷 밖에 입을 수 없었는데 목면이 보급되면서 겨울나기가 용이해졌습니다. 또한 목면으로 면포를 만드는 직조업이 발달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생산된 면포는 쌀과 마찬가지로 유력한 교환수단이 되어 상업의 발달을 촉진시키게 된 겁니다. 이러니 최초의 밀수가 한국의 산업혁명을 유발시켰다(?)는 평가도 가능할 듯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봐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의 중국은 목화씨의 국외반출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문익점 선생께서 몰래 가지고 우리나라에 오신 것이니 밀수죄에 해당될 듯 합니다만, 고려조정이 목화씨를 수입금지품목으로 정한 것은 아니므로 밀수는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재배한 곳을 목면 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라 합니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위치해 있는데요, 1363년(고려공민왕 12년) 문익점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하였다고 하며, 사적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귀국후 문익점은 파직되어 고향으로 내려와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가 목화재배에 매진한 것도 이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고향에서 장인 청천익과 함께 목화를 심어 길렀고, 재배는 성공했어도 목면으로 옷을 만들려면 목면의 씨를 빼고 솜을 타고 천으로 만드는 기술이 필요했는데, 문익점은 원의 승려인 홍원을 만나 물레 제조기술을 전수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손자 문래가 물레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또 다른 손자인 문영도 무명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고 합니다.

목화에서 실을 뽑는 기계를 물레라 하고 목화를 재배하여 만들어낸 옷감을 무명이라 하는데 모두 문익점의 손자 이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리고 의성에 목화를 대량으로 심어 우리 민족 모두가 백의민족의 따뜻함을 맛볼 수 있게 해준 사람인 문승로 또한 문익점의 손자라고 합니다. 하니, 가히 온 집안이 한국형 산업혁명가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밀수에 의한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연간 약 47조원이라고 합니다. 혹시 밀수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문익점선생의 일화를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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