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개봉된 '아웃 브레이크'는 전염병을 다룬 영화로서 유명하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매개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그 치료제를 만드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영화 중에 한국국적 화물선 태극호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를 옮기는 장면과 함께 태극기와 한국어가 나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처럼 국제 무역항을 오가는 화물선은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교통운송 수단의 발달과 국제교역의 확대는 더욱 전염병을 급속히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중에서도 콜레라 침입은 유명하다. 1876년 개항되던 첫해부터 부산항에는 일본에서 콜레라가 전파돼 많은 환자가 발생, 큰 혼란을 가져왔다.
예전에 콜레라는 걸리기만 하면 죽는 줄로 알았던 무서운 역병이었다. 그래서 이 병에 걸리면 마땅한 약이 없어 기댈 수 있는 것은 민간요법이 최상이었고 그 가운데 마늘은 특효약의 하나로 통했다. 그러나 콜레라에 대한 예방약이 개발되기 전에 살아남는 하나의 비법은 36계 줄행랑을 치는 것이 상책이었다. 1890년 제3대 부산해관장 헌트는 부산항 등지에 워낙 콜레라가 유행을 해서 자기 가족을 데리고 더욱 안전한 곳인 원산으로 피난을 갔다. 그곳 원산 해관장 관사에서 마음을 놓고 며칠을 묵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놈의 콜레라가 어느새 원산까지 따라와서 극성을 부리더란다.
어느 날 저녁 원산해관장이 개울가를 지나치다가 우리나라 사람이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를 목욕시키고 있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했다. 아마 유가족이 염을 하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며칠 후에 또 이 개울에서 이웃에 사는 한 일본인 부인이 야채를 씻고 있더란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남편이 콜레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안이 벙벙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은 결국 과학을 통한 현대의술에 접목하는 것이었다. 개항을 통해 불청객 콜레라가 찾아들어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현대의술이 먼저 찾아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개항 다음 해인 1877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병원건물인 관립 제생병원(濟生病院)이 부산에 세워지고 2년 후엔 전염병 전문 격리치료기관인 소독소피병원(消毒所避病院)도 부산 영도에 처음으로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항은 임해구역으로서 지역특성상 질병에 대한 특효약이 나오기까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염병의 도화선이었다.
지난 2000년 초 사스(SARS)나 조류독감이 유행할 적에 우리나라 공항과 항만은 비상이 걸렸다. 관문은 그 나라의 얼굴이요 단추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과 화물뿐 아니라 미생물인 전염병도 걸러내야 하는 특별감시구역이다. 그래서 이 지구상 어딘가에 무서운 괴질이나 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개항장인 국제공항만은 비상경비구역이 된다. 국내 잠입을 못하도록 철두철미한 방역과 감시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 공포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독감의 계절이 다가오면 또 다른 신종바이러스 전염병이 잠입할까봐 관문에는 긴장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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