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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될 번한 국보급 수출입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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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세관박물관내에 전시되어 있는 수출입신고서

 

지금 부산세관박물관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값어치가 있는 소장품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것은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수출입면장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도 유일하게 부산해관이란 명의로 남아있는 수출입면장이니 우리관세사 측면에서 볼 때 국보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귀중한 자료가 기증자의 손에 입수될 때까지의 이야기도 거의 국보급!!

그러니까 1992년 12월 17일 부산세관 총무과에 조그마한 표구를 든 노인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세관에 기증할 것이 있다면서 가지고 온 표구의 겉 포장지를 뜯어내자 그 곳에는 광무(光武) 5년(1901년)에 발급한 수출면장과 수입면장 그리고 징수월보 이렇게 3매가 나란히 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세관의 입장에서 보면 90년 전인 구한말 당시에 사용되어졌던 수출입면장을 가져왔으니 굉장히 중요한 자료를 가지고 온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몇 개월 후에 세관에서는 그 고마운 뜻을 감사패에 담아서 정중히 표시를 하였지만 그래도 기증품을 볼 때마다 항상 기증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고개가 숙여지게 됩니다.

 

 ▲ 수입면장

▲ 수출입면장

 

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가지고 몸소 세관을 찾은 사람은 당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에 살고 있는 일흔 중반의 박충희(朴忠熙:2004년 작고)씨였습니다. 젊은 시절 신문기자로 출발한 그는 지금 대구에서 발간되고 있는 영남일보의 창간 일원이기도 했으며, 어릴 적부터 우표 수집을 취미로 해서 훗날에는 불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골동품에 조예가 깊은 수집광이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불상조각가로서 트럼펫과 바이올린을 다루면서 생을 풀기도 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자 박선생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부산 동래 온천동에 허름한 기와집 한 채를 샀다고 합니다. 하루는 이사를 들고 나서 집안에서 대대로 물러 내려오는 병풍을 새롭게 표구하려고 이걸 천천히 뜯어 내리던 중에 맨 나중에 초벌로 붙어있던 문서가 몇 장 드러났는데, 한자로 인쇄된 한지 비슷한 종이에 붓으로 쓴 서류와 같은 것이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광무(光武)라는 연호(年號)가 적힌 가운데‘부산해관’과‘일본 제일은행부산지점’이라는 낯익은 이름이 보여서 아무래도 가치가 있는 자료가 될 것 같아서 물에 불려서 조심스럽게 뜯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리미로 다려서 보존을 하다가 표구를 하였는데 당시 수출입면장과 같은 문서는 고급용지로서 표구를 하는 데 초벌지로서 사용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수출입면장 등 세관서식은 청나라 양식을 그대로 따라하였으며 수출면장은 붉은 글씨로『釜山海關給發出口貨稅驗單』, 수입면장은 검은 글씨로『釜山海關給發進口貨稅驗單』으로 인쇄되어 있으며 규격은 각각 280˟250㎜입니다. 그리고 면장에서 외국환 및 수납업무는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경제수탈 제1호였던 일본의 제일은행 부산지점으로 되어있습니다.

 

▲ 생전 사찰을 즐겨 찾았던  박충희선생

 

낡고 보잘 것 없는 쓰레기와 같은 낡은 종이에서 보물을 건져낼 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이게 오랜 세월 동안 수집이란 취미를 하여오면서 나름대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의 눈에 띄었기에 망정이지 범부(凡夫)의 눈에 띄었더라면 이미 청소차에 실려 소각장에서 그 생을 마감하고 말았을테죠...?ㅎ 이러한 사연이 감춰져 있는 구한말의 수출입면장들은 어떻게 보면 진흙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연꽃처럼 우리 곁에 다가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훌륭한 소장자는 자기가 소장한 물품이 아무리 비싸고 귀중한 국보급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값 이전에 그 물품이 자리할 곳을 안다고 합니다. 한 사람 곁에 머물러도 그만인 물건이 있는가 하면 여럿 속으로 가야만 그 진가를 말할 수 있는 국보가 있다고 합니다.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 수출입면장은 세관박물관에서 자리를 잡아야 진가를 발휘하게 되고 제자리를 찾아 주는 것입니다. 생전에 박충희선생은 이걸 알고 몸소 실천을 하시다가 떠나신 훌륭한 분이셨던것 같네요. ^^


 기사제공: 부산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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