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코끼리가 언제 처음 들어왔는지 아시나요? ^^ 코끼리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1411년(태종 11년) 2월입니다. "일본 국왕 원의지(源義持)가 사신을 보내면서 코끼리를 바쳤다. 코끼리를 사복시(司僕寺·목장 등을 관장하는 관서)에서 기르게 했는데 하루에 콩 4~5말을 먹는다"고 태종실록에서 전하고 있는데요. 이 코끼리는 파렘방(지금의 인도네시아) 국왕이 수교 목적으로 일왕에게 선물한 것이었으나 때마침 쇼군(장군)이던 아버지가 사망, 일본은 국상 중이었습니다. 생전에 쇼군은 불교에 심취해 조선의 고려대장경을 들여오는 것을 소원했기에 코끼리와 대장경과 맞바꿨던 것이죠. 이듬해 공조전서를 지냈던 이우(李瑀)가 소문을 듣고 구경을 와서는 그 꼴이 하도 추해 보여 비웃으며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해서 밟아 죽이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병조판서 유정현은 "사람을 죽인 데다 일 년에 수백 석을 먹어치우고 있으니 사형에 처하는 것이 옳으나 임금의 짐승 사랑이 지극하시니 감일등(減一等)해 전라도 섬으로 추방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웃으며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수 앞 장도(獐島·노루섬)로 귀양을 간 코끼리는 그곳에 방목을 했으나 수초도 먹지 않고 날로 수척해져 갔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보면 눈물까지 흘린다는 이야기에 태종은 이를 불쌍히 여겨 다시 전라도 내륙지로 옮겨 키우도록 했지만 어려움이 많아서, 이후 코끼리는 충청도로 옮겨져 길러졌으나 역시 이곳에서도 민폐가 심했습니다. 결국 충청도 관찰사는 "바다 섬 가운데에 있는 목장에 옮겨 줄 것"을 훗날 세종에게 상소하자 임금은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골라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고 지시했고, 요즘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가는 곳마다 애물단지로 보인 코끼리였습니다.
이렇게 일본에서 건너온 코끼리 망령이 다시 이 땅에 되살아난 건 570여년이 지난 1980년대 초. 그것도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코끼리 상표를 단 전기밥솥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공항과 항만 입국장에는 일본을 다녀오는 여행자 대부분이 이 전기밥솥을 하나 들고 나오는 것이 유행처럼 돼 있었는데, 얼마나 인기가 좋았으면 1983년 부산의 한 여성단체가 일본여행 중 호화쇼핑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의 이름이 '코끼리 전기밥솥 사건'이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코끼리표 전기밥솥보다도 몇 배나 비싼 다양한 물품이 있었지만 여행자 모두가 이 주방용품을 몇 개씩 휴대하는 바람에 그렇게 불렸는데, 사실은 이 사건이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은 일본 아사히신문에 난 가십 기사 때문이였습니다. '한국의 J여성단체 관광객이 시모노세키에 있는 동안 계속 쇼핑만 해 귀국길에 통관할 때는 짐을 손으로 다룰 수가 없어 '발로 밀어 운반'하는 부인이 있을 정도'라는 기사가 다음 날 일본 주재 특파원에 의해 소속 신문사에 송고됐고 이 뉴스는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청와대에서 이 기사를 접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에이, 밥통도 제대로 하나 못 만드는 밥통들"하며 버럭 화를 내면서 관계 비서관으로 하여금 6개월 내 한국형 전기밥솥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이 성공을 거두자 자신감을 갖고 '생활필수품 100개 품목 품질 향상전략'에 뛰어들어 한 단계 품질이 향상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나의 파문으로 남을 여행자 호화쇼핑 사건이 뜻밖에도 산업분야로 옮겨붙어 전화위복의 선례가 됐죠. 임금이 사랑한 코끼리는 백성의 원망 속에서도 이 땅에서 연명했지만 대통령이 노한 일제 코끼리표 전기밥솥은 사건 후 더 이상 우리 주방에서 볼 수 없게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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