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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백물] 우리나라 최초 피아노, "선교사가 국내로 들여와 20명 넘는 짐꾼이 사흘에 걸쳐 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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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피아노가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설이 분분합니다. 최초의 피아니스트인 김영환(1893~1978)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양악백년'에서 1894년 우리나라 광무국 기사로 초빙된 프랑스인 에밀 마르텔이 1905년 초 결혼을 하면서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 아말리가 가져온 것으로 보았으며, 아말리는 독일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군악대장을 지낸 프란츠 에케르트의 맏딸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음악이론가 손태룡은 이보다 5년이나 앞서 미국의 북장로교 해외선교사인 리처드 사이드보텀(한국명 사보담·史保淡)이 1900년 초에 가져왔다고 주장하는데, 사보담 목사는 결혼 직후 아내인 에피 브라이스와 함께 1899년 부산에 도착해 대구로 발령을 받아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보다 3년 앞서 제3대 부산해관장 헌트는 1897년 부산 주재 영국 부영사를 겸임할 때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그의 부인이 초청인사에게 피아노 선율을 선사했습니다. 이러한 헌트 해관장의 활동 상황을 미뤄볼 때 이미 1900년 말에 부산에는 피아노가 반입돼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피아노가 들어온 것은 1900년 전후로 보이며, 17세기 말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에 의해 피아노가 탄생한 지 약 200년이 지난 뒤 국내에 반입된 것입니다. 서양 악기이다 보니 이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외국인이 도입해 목회활동 등에 주로 사용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피아노는 아무나 쉽게 옮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죠. 더군다나 구한말 도로사정이나 운반도구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을 당시 어떻게 이러한 피아노를 무사히 목적지에 운반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1900년 당시 사보담 부부가 피아노를 가져오면서 당시 운반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해 미국 친지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사보담 부부는 미국에서 부산항에 도착한 피아노를 다시 낙동강 나룻배에 싣고 수로를 따라 사문진 선착장(현 경북 달성군 화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러고는 강변 선착장에서 16㎞나 떨어져 있는 대구 시내 집까지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첫날에는 21명, 둘째날은 20명, 셋째날은 31명의 짐꾼을 고용해 사흘에 걸쳐 작업했는데, 짐꾼들이 피아노 운반에 상여용 막대기를 사용했습니다. 상여용 막대기로 운반도구를 만들어 피아노를 올려놓고는 밧줄로 단단히 묶은 다음 양편으로 각각 10여명씩 마치 나무상여를 메고 가는 것처럼 운반했습니다. 논과 산길, 언덕길, 개천 등을 지나면서 가까스로 처소에 도착했는데 막상 거실에 넣으려니까 출입구가 좁고 낮아서 결국 문을 뜯어내고 들여놓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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